태안문화원

글_고종남

서해를 지키던 성곽,

안흥진성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에 위치한 국가사적인 안흥진성은 수군 방어영으로 왜구와 해적으로부터 선박을 보호하고 유사시 강화도 를 지원하기 위해 곡식을 관리하는 군사적 기능 을 담당하였던 천연의 요새지이다.

안흥진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 전된 수군진성으로 동·서·남·북의 4개 문과 문루지(門樓址)가 있으며, 성내에는 동헌, 내아, 군기고, 제승루, 망해루 등 각종 건물지와 태국 사 절이 있는 등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성곽이다.

성의 전체 둘레는 1,798m 이나 현재 777m가 국방과학연구소가 점유하고 있어 일반인의 접근은 물론 행정관서의 성벽의 보존 관리 및 활용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나, 그동안 태안군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 2026년까 지는 반환할 계획으로 현재 반환 절차를 추진 중에 있다.

안흥진성의 4개 문중 동문에 해당하는 수성루 (守城樓)가 군사보호구역 울타리 안에 있어 일반 인은 접근할 수 없었으나, 2024년 8월 14일 태 안군의 업무협조로 현장에 직접 들어가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있었다.
태안군에서는 현재 동문과 남문을 비롯한 무너진 성곽에 대한 발 굴·보수 공사를 추진 중에 있으며, 군청 담당 주무관으로부터 안흥진성에 대한 상세한 보수공 사 개요와 안흥진성 특징 중 하나인 성곽에 돌출 돼 있는 두 개의 용도(甬道)에 대한 구체적 설명 을 들으며 성곽 위에 직접 올라가 볼 수 있었다.

안흥진성은 서해바다와 접한 높은 산에 위치 하여 시원한 바람과 함께 들어오는 주변 풍광이 장관을 이룬다. 웅장한 성곽의 석축 상태를 둘 러 보면서 지금으로부터 450여년 전 산 능선을 따라 3-4m 높이의 축성을 위해 수많은 크고 작 은 돌을 어디서 어떻게 이곳까지 옮겨와 쌓았을 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불가사의 한 일 이었다. 오늘날 처럼 중장비가 있어도 험한 산 꼭대기까지 저 큰 돌을 옮겨와 쌓기란 결코 쉽 지 않은 일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실정으로는 돌을 산꼭대기까지 운반 하기 위해서는 지게와 들것이나 목도에 의지해, 산에서 또는 바다에서 돌을 주워다 쌓았을 것을 생각해 보니 성돌 한장 한장이 조상들의 피와 땀이 배어있는 위대한 성곽임을 실감했다.

요즘 공직사회에서는 부실시공을 막고 시공· 관리자의 책임 의식을 높이기 위한 공사실명제 가 실행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450여년 전 성곽을 쌓으면서 공사실명제를 시행하고 있 었다. 자기가 공사한 곳에 지역 이름과 공사자 이름을 성돌에 새겨놓았다. “이상 은진(以上 恩津), 서천(舒川), 청주 김애종 석수 변수 (淸州 金愛從 石手 邊手), 만력11년…(萬曆十一年…), 덕산 김가지 석수 변수 (德山 金加之 石手 邊手)” 등이 새겨진 것을 볼 수가 있다.

당시 동원된 18개 고을의 인부들은 주로 농한기를 이용하여 부역기간 동안 먹을 식량을 가지고 현지 작업에 임하였으리라. 동원된 작업 인부들이 말 타고 올리는 만무하고 멀리 청주 지역에서부터 걸어서 왔을까? 또 서천에서는 배 타고 왔을까? 조상님들이 얼마나 비참한 삶 을 살았는가? 그렇게 힘든 일이기에 백성들 의 원성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된 것을 보면 마음이 착찹하기만 하다.

안흥진성은 이 험난하고 고된 작업과정을 거친 우리 조상들의 땀이 얼룩진 위대한 성곽이 다. 우리는 길이 보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 태안의 바다를 품은 이 오래된 성곽은 오랜 세월 풍파를 견디며 지금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늘 날 안흥진성이 지역 정체 성과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Slide
PlayPlay
Shadow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 홍예공원로 20, 충남공감마루 210호 _ T.041-635-9102 _ F.041-635-9104
COPYRIGHT(C) 2025. 충청남도문화원연합회. ALLRIGHTS RESERVED.